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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기문화

한국의 토기문화(土器文化)

흙을 구어서 만든 넓은 의미의 도자기(陶磁器)는 태토(胎土)의 굳기에 따라 토기(土器), 도기(陶器), 석기, 자기(磁器)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네 가지가 어느 경우나 뚜렷하게 구별되기란 어렵고 그것을 구분하는 기준도 애매하여 일반적으로 토기(土器)와 자기(磁器)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토기(土器)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무문토기(無文土器), 삼국(三國) 및 통일신라토기(統一新羅土器)인 도질토기(陶質土器)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들 토기(土器)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작기법과 소성방법(燒成方法)에 많은 차이가 있다.

빗살무늬토기, 무문토기(無文土器)등 선사시대(先史時代)의 대부분 토기는 점토질(粘土質)의 태토(胎土)를 이용하여 개방요에서 7~800°C의 산화염 소성(燒成)으로 만들기 때문에 토기(土기)의 색깔은 붉은색을 띠게 되며 경도 또한 매우 약하며 쉽게 부수어지고 물의 흡수가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에 삼국(三國) 및 통일신라(統一新羅)의 토기(土器)는 밀폐된 동요에서 1200°C정도의 환원염으로 소성하기 때문에 색깔은 회청색을 띠게 되고 경도는 매우 강하여 두드리면 금속성 소리를 낸다. 물의 흡수성은 선사토기(先史土기)에 비해 거의 없는 편이다.

신라토기와 가야토기의 차이점
신라토기와 가야토기의 차이점
기형(器形) 신라토기(新羅土器) 가야토기(伽倻土器)
호(壺)
(항아리)
  1. 목과 어깨의 접착부가 각을 이룬다.
  2. 태각(台脚)이 부착되는 경우가 많다.
  3. 무늬의 빗에 의한 물결무늬, 대칼에 의한 각종 기하학무늬 이외에 조그만한 토우를 붙이기도 한다.
  1. 목과 어깨는 곡선으로 연결된다.
  2. 태각(台脚)이 없고 따로 만들어진 기대(器臺)위에 얹혀진다.
  3. 무늬는 목둘레에 돌려진 물결무늬에 한정된다.
고배(高杯)
  1. 대체로 다리가 늘씬하고 직선적이며 다리아래의 구멍이 상하 엇갈리게 배치된다.
  2. 뚜껑의 꼭지는 단추처럼 된것과 구멍이 뚫린 것 두 가지가 있다.
  3. 그릇과 뚜껑의깊이가 대체로 깊다.
  1. 다리의 구멍은 좁고 길며 상하일렬로 배치된다.
  2. 뚜껑과 그릇은 모두 납작하며 다리는 곡선적이다.
  3. 뚜껑의 꼭지는 단추식으로 한정되며 무늬는 빗으로 누른 점선 뿐이다.
적색토기잔(초기철기시대)
적색토기잔(초기철기시대)
토기유병(고려시대)
토기유병(고려시대)
토기 양이부 소호(土器 兩耳附 小壺)
토기 양이부 소호(土器 兩耳附 小壺)

입지름 12cm, 둘레 50cm, 높이 22cm, 백제토기
최초의 공예품, 토기는 문화의 시작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창조된 최초의 공예품인 토기는 문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토기는 다루기 어렵고 청자, 백자보다 볼품은 없지만, 학술적 가치는 어느 문화재보다 높다. 토기의 종류는 출토 문화의 연대를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자기로 착각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기형이 주는 안정감, 질량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잡이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토기양이부(삼국시대)
토기양이부(삼국시대)
토기유개합(삼국시대)
토기유개합(삼국시대)
토기골호(통일신라)
토기골호(통일신라)
토기정병
토기정병
토기정병
토기정병

정병

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물 가운데서도 가장 깨끗한 물을 넣는 병을 이른다.

정병에 넣는 정수는 또한 중생들의 고통과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와도 서로 통하여 감로병 또는 보병, 군듸카라고도 한다.

정병은 본래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으로서 승려의 필수품인 18물의 하나인 것이, 차츰 부처님앞에 정수를 바치는 공양구로서 그 용도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불교의 정병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불교와 함께 우리에게 전래된 것으로 부처님 앞에 물공양으로 바치는 불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보살이 가지는 것으로 구제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편이자 자비심을 표현하는 지물구실을 하기도 한다. 정병의 재료는 토기나 금,은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청동과 도자기가 애용되어 왔으며, 특히 불교를 숭앙하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부터는 필수 불구로서 대량으로 조성되었다.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고려의 독창성을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불전공양에 있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청동제의 정병에서 새롭게 보이는 은입사기법은 밀랍주조법과 함께 청동기 전래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고려시대 우수하였던 금속공예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최종수정일 2020.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