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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희 선생 작품

신정희선생 작품

한국 전통도예의 거장 신정희(巨匠 申正熙)의 도예(陶藝)의 진가는 약 오백년만에 고려도기(高麗陶器)를 재현 한데에 있다고 본다.

고려도기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있었으며, 그 소박하고 고려도기만이 가진 따뜻함으로 인해 많은 학국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다인(茶人)들 속에서 그 우아함이 높게 평가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우리나라 국보(國寶)급 문화재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장식한 이러한 도기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속칭 도자기 전쟁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국 국토의 황폐와 다수의 우수한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은 당시 일본 문화에 귀속되어 그 작도(作陶)에 있어 점차로 형태와 질까지도 바꾸어 가게 되었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신정희는 고려도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언젠가는 이를 재현해 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동난시에 징병되어 전장속에서도 오로지 뇌리속에서는 이러한 도기의 재현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장의 와중에서도 고요적을 발견하게 되면 작도(作陶)에 몰두하였다.

그러한 연고로 군 생활에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동난후 신정희는 한국내에 남아있는 200여개소의 옛가마터를 차례로 찾아 다녔으며 가마의 구도를 조사하고 묻혀있는 조각을 파내어 당시의 도토(陶土)나 유약을 연구하였다.

29세때에는 가마터를 수리하여 직접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생각대로 작품이 잘되지 않았기에 굽고 부수고 하는 일을 여러 수천번을 더했다.

피가 사무치는 고생 끝에 겨우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 신정희 49세대의 일이다.

신정희의 작품은 정호(井戶), 삼도(三島), 철회(鐵繪), 진사(辰砂) 등 폭넓게 있으며 이러한 것 중 어떤것도 5백년의 시공을 초월한 당시의 광채를 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신정희를 한국 도예계를 대표하는 도예가로서 인정하여 그 작품을 한국을 찾는 각국 유명인사나 로마교황등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하기도 했다.

1990년 가을, KBS와 NHK 방송국이 공동 주최한 후쿠오카시에서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도쿄, 오사카, 쿄토등 일본 전국 대도시의 공공단체 주체로 순회 전시회를 개최하여 도예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도예의 근원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신정희의 작품은 단순히 한국 도자기로서 만이 아닌 일본 도자기의 원류(源流)로서 평가 될 수 있다.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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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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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희선생 작품
진주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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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희선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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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0.09.04